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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지식인: 공병호의 경우

강유원 님의 "자본과 지식인: 공병호의 경우"를 읽고나니 공병호라는 사람에게 가졌던 의혹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사람 변하기는 쉽지 않지.

그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독서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의 창출'이다. 읽어야 할 책은 이 목적에 부합되는 방향에서 선정된다. 세상의 모든 책이 읽을 가치가 있으나 목적이 다르면 똑같은 책에서도 얻어내는 것이 다를 것은 분명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논어論語를 읽으면서도 공병호는 '공자의 리더십', '논어에서 배우는 인재경영' 만을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
공병호는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 지식인' — 또는 '기능적 지식인' — 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람시에 따르면 자본주의 기업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조직화하고 더 큰 권력을 얻고 더 많은 통제력을 갖기 위해 자신들의 곁에 산업 기술자, 정치경제의 전문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법률체계의 조직가를 창출해낸다. 이들 지식인들은 자본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기 위해 사회에 개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 중의 한 사례를 공병호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자본에 의해 이용되는 지식인이면서 대중을 자본이 먹기 좋은 떡으로 재형성 해주고 그 과정에서 떡고물을 먹는다. 그는 자신을 "지적인 사업가"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언설들이 끼치는 해악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크다. 신경 바짝써서 경계해야 할 무리들은 바로 이들인 것이다.

from <armarius: ex libris>

hochan 씀

2004.11.12 13:52

카테고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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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몇 달간 즐겁게 글 읽었지만 실제로 글을 남기기는 처음이로군요. 강유원씨와 공병호씨에 대한 이견이 조금 있어 글을 남기려 합니다.

    강유원씨의 블로그로 가 공병호씨의 저서에 대한 전문을 보았습니다. 님은 여기에 특별히 코멘트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여기 상당히 동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대부분의 책은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죠. 조사에 따르면 기껏 10~20%만이 그 책의 정수라고 합니다. 꼼꼼히 읽어야 하는 책은 '고전' 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개론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책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뽑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독서기술이 더욱 필요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유원씨도 그다지 반박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강유원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독서의 목적과 방법의 잣대를 오직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둔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강유원씨가 지적했듯 공병호씨의 독서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가 이전에 쓴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등의 책을 봐도 오직 시장가치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기법을 제시할 뿐 목적은 독자에게 맡겨두죠.

    그리고 '속도감있는 책읽기' 이것이 굳이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방법일까요? 시장에서 가치창출을 바라는 이 뿐 아니라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를 비롯해 다독과 속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밝혔듯 꼼꼼히 읽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이며 빠른 책읽기는 다독을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되죠. 토니 부잔의 책에서도 속독이 오히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독서방법 역시 자기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저는 강유원씨의 비판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차라리 오직 사회가 바라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유학열풍(헛바람?)을 일으키는 '홍정욱' 이나 '금나나' 등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그리고 강유원씨 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심각하게 근본주의적이라는 겁니다. 고압적이고 원칙적인 글들은 글에 힘은 실어주지만 이 글과 같이 좀 더 많은 관점을 배재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al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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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몇 달간 즐겁게 글 읽었지만 실제로 글을 남기기는 처음이로군요. 강유원씨와 공병호씨에 대한 이견이 조금 있어 글을 남기려 합니다.

    강유원씨의 블로그로 가 공병호씨의 저서에 대한 전문을 보았습니다. 님은 여기에 특별히 코멘트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여기 상당히 동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대부분의 책은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죠. 조사에 따르면 기껏 10~20%만이 그 책의 정수라고 합니다. 꼼꼼히 읽어야 하는 책은 '고전' 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개론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책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뽑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독서기술이 더욱 필요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유원씨도 그다지 반박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강유원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독서의 목적과 방법의 잣대를 오직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둔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강유원씨가 지적했듯 공병호씨의 독서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가 이전에 쓴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등의 책을 봐도 오직 시장가치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기법을 제시할 뿐 목적은 독자에게 맡겨두죠.

    그리고 '속도감있는 책읽기' 이것이 굳이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방법일까요? 시장에서 가치창출을 바라는 이 뿐 아니라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를 비롯해 다독과 속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밝혔듯 꼼꼼히 읽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이며 빠른 책읽기는 다독을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되죠. 토니 부잔의 책에서도 속독이 오히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독서방법 역시 자기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저는 강유원씨의 비판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차라리 오직 사회가 바라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유학열풍(헛바람?)을 일으키는 '홍정욱' 이나 '금나나' 등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그리고 강유원씨 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심각하게 근본주의적이라는 겁니다. 고압적이고 원칙적인 글들은 글에 힘은 실어주지만 이 글과 같이 좀 더 많은 관점을 배재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al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