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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댓글 : 자본과 지식인: 공병호의 경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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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성적 결합을 원하는 곳</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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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드모델가 만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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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누드모델</dc:creator>
		<pubDate>Sun, 14 Nov 2004 07:23:0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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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안녕하세요. 몇 달간 즐겁게 글 읽었지만 실제로 글을 남기기는 처음이로군요. 강유원씨와 공병호씨에 대한 이견이 조금 있어 글을 남기려 합니다.

 강유원씨의 블로그로 가 공병호씨의 저서에 대한 전문을 보았습니다. 님은 여기에 특별히 코멘트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여기 상당히 동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대부분의 책은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죠. 조사에 따르면 기껏 10~20%만이 그 책의 정수라고 합니다. 꼼꼼히 읽어야 하는 책은 &#039;고전&#039; 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개론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책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뽑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독서기술이 더욱 필요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유원씨도 그다지 반박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강유원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039;독서의 목적과 방법의 잣대를 오직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둔다&#039; 는 것입니다. 

 하지만 &quot;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quot;  라는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강유원씨가 지적했듯 공병호씨의 독서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가 이전에 쓴 &#039;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039; 등의 책을 봐도 오직 시장가치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기법을 제시할 뿐 목적은 독자에게 맡겨두죠.

 그리고 &#039;속도감있는 책읽기&#039; 이것이 굳이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방법일까요? 시장에서 가치창출을 바라는 이 뿐 아니라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를 비롯해 다독과 속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밝혔듯 꼼꼼히 읽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이며 빠른 책읽기는 다독을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되죠. 토니 부잔의 책에서도 속독이 오히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독서방법 역시 자기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저는 강유원씨의 비판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차라리 오직 사회가 바라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유학열풍(헛바람?)을 일으키는 &#039;홍정욱&#039; 이나 &#039;금나나&#039; 등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그리고 강유원씨 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심각하게 근본주의적이라는 겁니다. 고압적이고 원칙적인 글들은 글에 힘은 실어주지만 이 글과 같이 좀 더 많은 관점을 배재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ally~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안녕하세요. 몇 달간 즐겁게 글 읽었지만 실제로 글을 남기기는 처음이로군요. 강유원씨와 공병호씨에 대한 이견이 조금 있어 글을 남기려 합니다.</p>
<p> 강유원씨의 블로그로 가 공병호씨의 저서에 대한 전문을 보았습니다. 님은 여기에 특별히 코멘트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여기 상당히 동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p>
<p> 우선 대부분의 책은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죠. 조사에 따르면 기껏 10~20%만이 그 책의 정수라고 합니다. 꼼꼼히 읽어야 하는 책은 &#039;고전&#039; 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개론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책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뽑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독서기술이 더욱 필요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유원씨도 그다지 반박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p>
<p> 강유원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039;독서의 목적과 방법의 잣대를 오직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둔다&#039; 는 것입니다. </p>
<p> 하지만 &#034;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034;  라는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강유원씨가 지적했듯 공병호씨의 독서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가 이전에 쓴 &#039;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039; 등의 책을 봐도 오직 시장가치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기법을 제시할 뿐 목적은 독자에게 맡겨두죠.</p>
<p> 그리고 &#039;속도감있는 책읽기&#039; 이것이 굳이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방법일까요? 시장에서 가치창출을 바라는 이 뿐 아니라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를 비롯해 다독과 속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밝혔듯 꼼꼼히 읽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이며 빠른 책읽기는 다독을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되죠. 토니 부잔의 책에서도 속독이 오히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독서방법 역시 자기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p>
<p> 이런 점에서 볼 때 저는 강유원씨의 비판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차라리 오직 사회가 바라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유학열풍(헛바람?)을 일으키는 &#039;홍정욱&#039; 이나 &#039;금나나&#039; 등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p>
<p> 그리고 강유원씨 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심각하게 근본주의적이라는 겁니다. 고압적이고 원칙적인 글들은 글에 힘은 실어주지만 이 글과 같이 좀 더 많은 관점을 배재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p>
<p> 마지막으로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ally~ <img src='http://hochan.net/wp-includes/images/smilies/icon_smile.gif' alt=':)' class='wp-smiley'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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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드모델가 만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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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4 Nov 2004 07:23: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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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안녕하세요. 몇 달간 즐겁게 글 읽었지만 실제로 글을 남기기는 처음이로군요. 강유원씨와 공병호씨에 대한 이견이 조금 있어 글을 남기려 합니다.

 강유원씨의 블로그로 가 공병호씨의 저서에 대한 전문을 보았습니다. 님은 여기에 특별히 코멘트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여기 상당히 동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대부분의 책은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죠. 조사에 따르면 기껏 10~20%만이 그 책의 정수라고 합니다. 꼼꼼히 읽어야 하는 책은 &#039;고전&#039; 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개론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책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뽑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독서기술이 더욱 필요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유원씨도 그다지 반박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강유원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039;독서의 목적과 방법의 잣대를 오직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둔다&#039; 는 것입니다. 

 하지만 &quot;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quot;  라는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강유원씨가 지적했듯 공병호씨의 독서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가 이전에 쓴 &#039;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039; 등의 책을 봐도 오직 시장가치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기법을 제시할 뿐 목적은 독자에게 맡겨두죠.

 그리고 &#039;속도감있는 책읽기&#039; 이것이 굳이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방법일까요? 시장에서 가치창출을 바라는 이 뿐 아니라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를 비롯해 다독과 속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밝혔듯 꼼꼼히 읽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이며 빠른 책읽기는 다독을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되죠. 토니 부잔의 책에서도 속독이 오히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독서방법 역시 자기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저는 강유원씨의 비판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차라리 오직 사회가 바라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유학열풍(헛바람?)을 일으키는 &#039;홍정욱&#039; 이나 &#039;금나나&#039; 등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그리고 강유원씨 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심각하게 근본주의적이라는 겁니다. 고압적이고 원칙적인 글들은 글에 힘은 실어주지만 이 글과 같이 좀 더 많은 관점을 배재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ally~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안녕하세요. 몇 달간 즐겁게 글 읽었지만 실제로 글을 남기기는 처음이로군요. 강유원씨와 공병호씨에 대한 이견이 조금 있어 글을 남기려 합니다.</p>
<p> 강유원씨의 블로그로 가 공병호씨의 저서에 대한 전문을 보았습니다. 님은 여기에 특별히 코멘트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여기 상당히 동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p>
<p> 우선 대부분의 책은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없죠. 조사에 따르면 기껏 10~20%만이 그 책의 정수라고 합니다. 꼼꼼히 읽어야 하는 책은 &#039;고전&#039; 이라 불리는 책들이나 개론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책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뽑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독서기술이 더욱 필요한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유원씨도 그다지 반박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p>
<p> 강유원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039;독서의 목적과 방법의 잣대를 오직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둔다&#039; 는 것입니다. </p>
<p> 하지만 &#034;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034;  라는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강유원씨가 지적했듯 공병호씨의 독서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가 이전에 쓴 &#039;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039; 등의 책을 봐도 오직 시장가치창출에 목적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기법을 제시할 뿐 목적은 독자에게 맡겨두죠.</p>
<p> 그리고 &#039;속도감있는 책읽기&#039; 이것이 굳이 시장에서의 가치창출에만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방법일까요? 시장에서 가치창출을 바라는 이 뿐 아니라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를 비롯해 다독과 속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밝혔듯 꼼꼼히 읽는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이며 빠른 책읽기는 다독을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되죠. 토니 부잔의 책에서도 속독이 오히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독서방법 역시 자기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p>
<p> 이런 점에서 볼 때 저는 강유원씨의 비판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차라리 오직 사회가 바라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유학열풍(헛바람?)을 일으키는 &#039;홍정욱&#039; 이나 &#039;금나나&#039; 등의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p>
<p> 그리고 강유원씨 글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심각하게 근본주의적이라는 겁니다. 고압적이고 원칙적인 글들은 글에 힘은 실어주지만 이 글과 같이 좀 더 많은 관점을 배재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p>
<p> 마지막으로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ally~ <img src='http://hochan.net/wp-includes/images/smilies/icon_smile.gif' alt=':)' class='wp-smiley'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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