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주의 인지법"
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영상에 중독된 일상을 살고 있는 대중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없으면 있어도 없는 게 되고, 보여줄 수 있으면 별것 아닌 것도 큰일이 된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각적으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계급투쟁은 주목투쟁이다. 누가 더 대중의 주목을 많이 뜨겁게 쟁취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정치인과 연예인만 주목투쟁을 하는 게 아니다. 주목을 받아야 취업도 하고 연애도 할 수 있다. 놀이인들 주목에서 초연할 순 없다. UCC를 보라. 모두 '날 좀 보소'를 애타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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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주의 인지법은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다. 먹고살기 바쁜 대중이 시각 중심으로 세상을 보겠다는데 그걸 무슨수로 말릴 것이며 그런 대중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에 대해 가장 고민해야 할 주체는 언론이다. 추상적 이슈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보도 기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연히 그림이 좋은 사건이 터져주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스스로 그림을 생산해낼 수 있는 보도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강준만의 세상읽기 - '이과수'보다 세차게 공공기관 개혁을 논하라", <한겨레21>, 2007.6.5, 제662호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