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쓰다보면
트위터를 쓰다보면 내가 친구로 등록해 놓은 사람들("following")끼리 서로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내 친구인 김 모씨와 이 모씨는 서로 전혀 모른다. 그러나 내 공간에서는 둘이 하나의 공간에 묶여있다. 내가 쓰는 글을 둘 다 본다. 내가 임의로 설정한 커뮤니티가 된다. 유일무이한, 나만의 고유 공간이다. 카페 서비스처럼, 가입한 특정 카페마다 다른 정체성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 단일한 정체성만 흐르게 하면 된다. 관계와 관리 모두 단순하다.
추가(2009.4.23):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Study: People manage their privacy on Facebook naturally")가 나왔다.
jfactory님 / "중립적인 정체성"을 '공통의 정체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 제가 글에서는 A와 B 두 명만 예로 들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트위터 친구의 수가 그것보다 많습니다. 이 경우 공통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겠습니다. 이벤트성이긴 하지만 영화배우 애쉬튼 커쳐( http://twitter.com/aplusk)가 follower 1백만명을 돌파했다는군요(관련기사 http://tinyurl.com/dxez3t).
2. 트위터에서의 친구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도 있겠으나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는 어떤 전략으로 커뮤니케이션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지에 대해 결정하기 힘듭니다. 그냥 하던대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3.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전략에 따라서만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스파이가 아닌 일반인들이 그러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이런 것들을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는 트위터의 단순함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수많은 이유 중에 몇 가지이겠지만요).
jfactory님 / "중립적인 정체성"을 '공통의 정체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 제가 글에서는 A와 B 두 명만 예로 들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트위터 친구의 수가 그것보다 많습니다. 이 경우 공통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겠습니다. 이벤트성이긴 하지만 영화배우 애쉬튼 커쳐( http://twitter.com/aplusk)가 follower 1백만명을 돌파했다는군요(관련기사 http://tinyurl.com/dxez3t).
2. 트위터에서의 친구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도 있겠으나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는 어떤 전략으로 커뮤니케이션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지에 대해 결정하기 힘듭니다. 그냥 하던대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3.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전략에 따라서만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스파이가 아닌 일반인들이 그러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이런 것들을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는 트위터의 단순함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수많은 이유 중에 몇 가지이겠지만요).
블루피그미의 생각…
트위터를 쓰다보면 내가 친구로 등록해 놓은 사람들(following)끼리 서로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 종종 착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