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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멀스멀 새벽

새벽에 나를 짓누르는 것들이 있다. 가슴 한 구석의 방에 쌓아둔 것들. 정리되지 않고, 자물쇠로 채워 놓지도 않은. 살짝 열린 문 틈으로 어두운 새벽의, 정신의 빛이 가늘게 어른거릴 때, 그것들은 어느샌가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절반쯤 고개를 내밀어 나를 쳐다본다.

피하고 싶은 문제들, 시도하고 싶지 않은 해결책들, 이루기 힘든 목표들, 오래 걸리는 즐거움들, 반복되는 포기들, 피할 수 없는 열등감, 모든 부정적인 것들. 언젠가는, 언젠가는을 되뇌이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흘러가는 시간.

사실 그것들이 나를 만들어 왔으며, 나의 힘이었다. 어두운 힘. 등 뒤에 벼랑이 있다고 상상하며 한 발자국만 밀리면 끝이다라거나 될 때로 되라며 몸을 내맡기는, 지금이 중요하다며 내일을 내 일로 여기지 않는 방식. 이 모든 것들이 쳐들어오는 시간. 세 시에서 다섯 시 무렵. 두 아이의 눈빛과 미소를 떠올리며 선을 긋는다. 이만큼, 이만큼. 세 번 안에 돌아와야 하는 땅따먹기처럼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하다.

가슴 속의 잡동사니들을 어떻게 할까? 문제는, 잘못 건드려 화라도 돋구면 대책 없이 커져버리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잘 달래어, 공책으로 옮겨, 그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세상 밖으로 풀어놓기. 아니면, 그 눅눅하고 어두운 방을 활짝 열어서 환히 텅 비우는 것이다. 그런다고 잡동사니들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지는 않겠지만, 스멀스멀 잠식해 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펜과 공책으로 가능한 것들이니, 20대의 나이에,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멋지게 날리시던 분들, 지금쯤은 구원 받으셨는지 한 소식 좀 전해주시길.

hochan 씀

2010.8.23 06:36

카테고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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