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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받은 편지함은 누구의 것일까? –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2001.6.11)

MS Outlook BR 2005 Kcuf 9th

2005년 6월 11일. 호찬은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과거에는 컴퓨터라고 불렸던 STM을 켰다. 수냉식 냉각장치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몇 개의 램프들이 바쁘게 깜빡인다. 짧은 부팅 시간 동안, 알람 시각에 맞쳐 만들어진 신선한 에스프레소를 가져온다. 자리에 앉으며 해야 할 작업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해 본다. 이메일 확인, 급한 답장, 뉴스 리뷰, 미팅 확인, 은행 송금…… MS Outlook BR 2005 Kcuf 9th 버전을 실행한다.

문지방에 서서

서른이라는 나이. 사촌 큰집에 가면 가문의 최고 연장자인 증조할머니께서 계셨다. 당신께서는 내가,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한옥의 높은 문지방에 신기해하며 올라가 있으면 항상 엄한 얼굴로 꾸짖으셨다. "거긴 밟고 서는 거 아니다." 증조할머니 뿐만 아니셨다. 내 나이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지방 위에 올라가 있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마치 문지방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다.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해야 하는 불안이 있고,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은 계속 결정을 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호찬은 과연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지 의문스럽다. 그 날렵한 턱 위에 서서, 좀 더 긴장감을 느끼며 살면 안되는 걸까하는.

천천히 생각하는 기계

받은 편지함에 메일들이 쌓인다. 아웃룩의 음성 소프트웨어가 결과를 정리해 주기 시작한다.
"총 받은 메일 64개, 뉴스레터 10개, 자동으로 지운 메일 34개, 뉴스레터를 제외한 읽어야 할 메일 총 20개. 제목들을 읽어드릴까요?", STM 에이전트인 코퍼 엘프(Copper Elf)가 고운 음성으로 묻는다.
"됐어," 호찬이 말했다.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으로 머신들의 성능이 발전했지만 몇 년 전과 마찬가지로 달라진 것은 여전히 처리속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수준 이상을 넘어가자 속도에 둔감해졌다. 컴퓨터 업계는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속이기로 결심 했다. 글로벌 컴퓨터 기업들은 자신들끼리의 뒷거래를 통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수년 간에 걸쳐 시행했다. 그 결과로 이제 컴퓨터는 "계산하는 기계(Computing-Machine)"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계(Thinking-Machine)"가 되었다. 사람들의 반감을 예상했던 지 약간은 겸손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느낌의 "Slow"를 붙였다. 그렇게 해서 "천천히 생각하는 기계(STM, Slow-Thinking-Machine)"가 탄생하였다. 이제 글로벌 기업의 권능은 또 다른 인간종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스팸 증후군

호찬은 새로운 메일들의 제목을 훑어본다. 이제 제목만으로는 스팸 메일을 구분해 낼 수 없다. 이메일 마케팅이라는 명목 아래 발전해 온 스패밍 기술은 사람들의 "받은 메일함"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 받은 메일함은 이제 호객꾼으로 어지러운 장터가 되어버렸다. 하나의 개인적인 메일을 읽기 위해서 대략 8개 이상의 스팸 메일을 지워야 한다. 필터링 기능도 20% 정도의 역할 밖에 못한다. 이메일 마케팅 업체의 계속적인 로비로 인해 스팸방지법은 최초 입법 목적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완화된 처벌 때문에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메일이 이젠 정도 이상의 스트레스와 비용을 감수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루기 힘든 도구가 되어버렸다. 얼마전에는, 자신의 이메일을 웹 사이트 게시판에 올리는 실수를 한 중년의 남자가, 한 시간에 백 통 이상씩 쏟아져 들어오는 스팸메일 때문에 업무에 필요한 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나머지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런 일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스팸 증후군"이라는 용어마저 생겼다.

양심의 공간

역시 오늘도 반 이상의 메일들을 스패머 리스트에 추가하며 지운다. 결국 받았어야 할 메일은 3개에 불과하다. 호찬은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B2W(Business With Web, 과거에는 e-business라고들 했다)"의 보편화로 다들 조금씩은 스패머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받은 편지함의 공간을 조금씩 내준 셈이 되어 버렸다. 양심의 공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호찬은 자신의 것만은 온전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불가능한 바램일까. 호찬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 받은 편지함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게 아닐까?"

hochan 씀

2003.4.5 23:30

카테고리 O

금욕주의

어려서부터 키워온 알 수 없는 금욕주의가 있습니다. 좋은 욕망이든 나쁜 욕망이든 강렬한 것은 지긋이 참으며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그 원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착하고 나이보다 점잖은 아이'라는 칭찬을 즐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그 칭찬을 유지하려면 계속 얌전하고 착하게 행동해야 했으니까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습관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지속된 것 같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강렬한 것을 즐거워 하지 않다보니 남이 보기에는 항상 조용하고 우울하고 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아, 조용하려다 보니 말도 많이 하지 않으며 컸지요. 과묵하고 점잖은 남자로. 또래보다 책읽기, 생각하기를 좋아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체구도 컸으니 별로 어렵지 않았죠.

이런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이 서른두살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약간 웃기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금욕주의가 서른살 이후의 느긋함과 결합하여 현실에 계속적인 타협과 안주를 계속하려는 습성이 마치 습기를 만난 곰팡이처럼 내 몸과 정신 전체에 퍼져나가려는 기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들과 이별하며 정확하고 엄격한 선을 그으려고 합니다.

참지 말고 행동하라.
네 몸을 이겨라.
항상 가치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라.

교인은 아닙니다만 생각나는 성경구절을 옮겨보고 싶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은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마태오 복음서 5:3~12)

hochan 씀

2003.4.5 23:28

카테고리 O

금성출판사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 50권

출판사 일에 관련되어 있다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책을 방문판매하던 출판사 아저씨가 고맙게 여겨집니다.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 50권. 책마다 보관하는 껍데기의 색깔들이 모두 달라서 알록달록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함께 온 하얀 책장에 예쁜 색깔들도 가지런히 꽂혀 있었습니다. 책마다 수십 번씩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밥 먹으면서, 오후반 등교 시간을 기다리며… 내 상상력의 8할은 이 책들의 신세를 졌습니다. (8대2 법칙이 이것에도 적용되는가.)

이 '내 ~의 8할은 ~'이라는 표현을 누가 처음 썼던가요? 기형도 시인이었던가. 기억이 안나는군요. 구글을 뒤져봅시다. 안나오네. 문득, 구글은 다른 이들의 상상력을 빌려쓰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ochan 씀

2003.4.5 23:27

카테고리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