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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성적 결합을 원하는 곳

"시각주의 인지법"

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영상에 중독된 일상을 살고 있는 대중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없으면 있어도 없는 게 되고, 보여줄 수 있으면 별것 아닌 것도 큰일이 된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각적으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계급투쟁은 주목투쟁이다. 누가 더 대중의 주목을 많이 뜨겁게 쟁취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정치인과 연예인만 주목투쟁을 하는 게 아니다. 주목을 받아야 취업도 하고 연애도 할 수 있다. 놀이인들 주목에서 초연할 순 없다. UCC를 보라. 모두 '날 좀 보소'를 애타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
시각주의 인지법은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다. 먹고살기 바쁜 대중이 시각 중심으로 세상을 보겠다는데 그걸 무슨수로 말릴 것이며 그런 대중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에 대해 가장 고민해야 할 주체는 언론이다. 추상적 이슈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보도 기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연히 그림이 좋은 사건이 터져주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스스로 그림을 생산해낼 수 있는 보도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강준만의 세상읽기 – '이과수'보다 세차게 공공기관 개혁을 논하라", <한겨레21>, 2007.6.5, 제662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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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준거점

hof님은 '겸손과 부끄러움'이란 글에서 겸손은 인터넷 관련 직무에 필수적인 '덕목'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나는 기획, 디자인, 개발 등에 관한 능력은 '기능'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권장되는 미덕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입장이다. (회사에서도 인간적으로는 말종이지만 일을 잘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확실히 겸손이 가져다주는 많은 장점이 있으나 그 효과에 대한 설명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참고할만한 것을 읽었다. 조직이 아닌 개인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조직이 준거점 이상으로 이동하게 되면, 다시 말해 목표나 비전을 초과달성하게 되면 조직의 행태가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준거점 이하에서는 조직이 원기왕성하고 활동적이지만, 준거점을 초과하게 되면 과거의 성공을 방어하는 조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표 5-1> 준거점에 따른 조직의 행태 변화

  준거점 이상에서 (준거점을 낮게 잡을 때) 준거점 이하에서 (준거점을 높게 잡을 때)
새로운 이슈에 대한 인식 위협으로 인식, 스스로 세계의 정상에 앉아있는 듯함, 손실의 가능성과 연관지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 기회로 인식, 밑바닥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듯함, 이익의 가능성과 연관지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
조직 내부의 행태 억눌리고 경직적인 행태 개방적이고 유연한 행태
외부환경에 대한 대응태도 위험을 회피하고,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태도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하며, 공격적인 태도

(《시나리오 플래닝》, 마츠 린드그렌, 한스 반드홀드, 212~213쪽에서 인용)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
그것이 내가 인식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
내 꿈이 뭔지 잘 모르겠는 자신도 부끄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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