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9: 이것이 '소셜'이다.

차가운 겨울, 화요일 새벽 5시. 고요한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박스 안에서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는 통행 카드와 지폐를 건넨다. 그가 다시 반갑게 작별 인사를 하며 건넨 영수증을 손에 쥐고 나는 떠난다. 우리는 뭔가 주고받았으나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둘을 위해 이 순간을 기록해야 할까. 단말기에 숫자로 입력된 '누구'는 분명한 이진 코드로 남을 것이다.

내가 뚜벅뚜벅 걸어 이 톨게이트를 지난다. 그리고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돈 대신 따뜻한 손을 건넸다면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서로 한 시간쯤은 더 기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눈을 감으며 그런 미친 시간을 떠올리고는 영원한 시간 동안 기억할지도.

사무엘 씨는 트위터의 무한에 가까운 글들을 모두 읽으려 하지 말고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목록'(list) 기능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기를 권한다. ('Happiness in 140 characters') 맞는 말이긴 하다. 가령 내가 팔로잉하고 있는 사람이 500명이고, 이 각자가 하루에 평균 다섯 개의 트위트를 올리고, 한 개의 트위트가 평균 100자 정도라고 했을 때, 매일 읽어야 할 글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1,250장, A4로는 약 125장, 웬만한 얇은 책 한 권 정도의 양이다. 문제는 그 책이 양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은 나 스스로 당신을 따르겠노라, 단추를 눌러 고백했으나 이제는 야멸치게 차별해야 하는 진실의 시간 — 나에게 중요한 것이 우선 — 을 마주해야 한다.

그렇다면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정보를 위한 것인가 관계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보를 얻기 위해 관계를 이용하는 것인가? 한 켠에 숫자로 찍혀 있는 수백, 수천 명과의 관계는 톨게이트 박스 안의 그처럼 사람이긴 하지만 느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충분히 무관심하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아무 고민 없이 서로에게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거나 그 반대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최소한 서비스 용어에 있어서는 트위터가 페이스북보다 열 배는 정직하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을 뿐이다. 이것이 '소셜'이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가진 사람을 찾고,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선택하는 것. 그를 사람으로 대할지 정보로 대할지, 팔로우할 것인지 목록에 넣을 것인지, 말을 걸 것인지 경외하며 쳐다만 볼 것인지 말이다.

이원태, <트위터의 정치사회적 영향과 시사점>, KISDI

결론적으로 소셜미디어의 정치사회적 영향력 증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소셜 네트워크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규제체계 및 행위규범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로 모아진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스마트-소셜 네트워크 환경이 제공하는 참여와 소통의 풍부한 민주적 ․ 문화적 가치를 제약하는 불공정한 규제 환경과 관행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 소셜미디어 기반의 정책 커뮤니케이션 전략 재구축, △ 트위터 등 새로운 매체 환경에 부합하는 선거규제 패러다임 전환, △ ‘프라이버시 리터러시’ 개념 도입 및 이용자 중심의 개인정보 보호체계 재정립 등을 들 수 있다.

이원태, <트위터의 정치사회적 영향과 시사점>, KISDI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미미하던 시점에는, 현실의 권력을 이용하여 실정법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의 견제가 가능할만큼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졌다.

단순히 언론사의 구성원들이 수행하던 역할을 일반 시민이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사이에는 매우 새로운 요소와 관계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내가 그 차이를 왜 보고 싶어하는지부터 정리해봐야겠다.

2-55-8: 아이패드 때문에 아이와 멀어질지도 몰라.

bedtime stories - an encore of Quiet, LOUD! - _MG_0292

올드 미디어(TV, 신문, 잡지). 빅 4(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매쉬업(mashup). 생산과 유통을 분리. 프리미엄 콘텐츠. 한 주간 동향 보고서의 핵심어들이다. 문장으로 정리해 보면, '향후 올드 미디어의 시대는 끝날 것인데 새롭게 부상한 미디어 업계의 빅 4는 콘텐츠의 매쉬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올드 미디어는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여 불변하는 가치를 가진 프리미엄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느낌: 기시감과 허망함. 몇 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 '콘텐츠가 최고다'라는 상투구와 매쉬업, 프리미엄 콘텐츠라는 실체를 알기 힘든 것들 때문에 말이다.

매쉬업은 (웹 서비스를 만드는 기술적인 관점의 용어로서는 모르겠지만) 사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의 용어로는 부적합하다. (한 때의 유행어를 파고드는 것도 우습지만) 한 가지만 짚자면, 매쉬업은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재료를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인데, 다양한 재료가 새로운 가치의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연금술에 가깝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과정에는 파악하지 못한 다른 것들이 개입하고 있을 것이고, 그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나만 말하라면 '네트워크'를 들겠다.

'콘텐츠가 최고'라지만 콘텐츠 기업은 유통 기업에 계속 주도권을 뺏겨 왔다. 음반, 뉴스 산업도 그랬고 영상, 출판 산업도 요동치고 있다. 현재 국내 지상파, 케이블 TV의 '프리미엄 콘텐츠'는 뭘까? 이것의 평가 기준으로서는 현재까지는 '시청률'이 유일해 보인다. 드라마, 예능, 구체적으로는 '대물', '1박2일', '슈퍼스타K' 같은 것들이겠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많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만 골라 만들 수 있으면 걱정이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이것들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업계라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 인터넷 업체들이 지상파/케이블 TV 업체들과 동영상 콘텐츠 사용에 대해 협의하는 것을 지켜보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음반, 뉴스 업계가 어떻게 주도권을 뺏겼는지 목격했기 때문에 유통 역시 자신들이 직접 통제하고 싶어한다. 시청률이 높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업체일 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환경에서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라는 것은 후발 업체들이나 흥미 있어 할 얘기다.

또 다른 동향을 보자. 가트너그룹의 보도자료('Gartner to CEOs: Seize the iPad Opportunity Now')를 요약한 것인데, 아이패드가 많은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이므로 "이를 스쳐 가는 유행 정도로 간주한다면, 후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고 "뒤늦은 채택이 불러오게 될 비용은 매우 높을(extremely high) 수 있다"며 '너희 아이패드 안 쓰면 힘들어질텐데?'라는 식으로 '협박'하고 있다. 여기서 아이패드를 가리켜 "시장 파괴적인 기기(market-disrupting device)" 즉,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기기라고 일컫는데, 이것을 앞에서 잠깐 언급한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고 싶다. 일단 아이패드가 행위자로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들이 다양하다. 앞의 보도자료에서는 기존의 노트북이나 PDA, 심지어 스마트폰도 참여할 수 없었던 영역(가령 병원, 관광, 항공 등)에까지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또한 아이패드(라는 기술)가 네트워크에 참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행위자들 간의 권력 관계를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가 전자책 기기로 활용됨으로써 저자, 출판사, 서점, 온라인 서점, 독자 간의 기존 관계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할 네트워크의 모습을 나름대로 예측하고 자신은 어디에 위치하면 좋을지를 궁리하고 있다. 돈의 흐름을 좇기도 할 것이고, 낮은 비용의 자유로운 출판을 원하기도 할 것이고, 새롭고 편리한 독서 생활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패드 같은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파괴하는 것은 기존 시장만이 아니다. "유년기 발달 분야에서 일하는 재니스 임은 어린 남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 사이에 일어난 걱정할만한 일을 목격했다. 두 살 반 쯤 되어보이는 남자 아이는 계속 자신의 엄마와 말하려고 했으나 엄마는 자신의 블랙베리(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 엄마? 엄마?'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임씨는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의 다리를 건드리기 시작했고 엄마는 '어 잠깐만, 잠깐만'이라고 했다. 아이는 매우 낙담해서 결국은 소리를 지르며 엄마의 다리를 물려고 했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익숙한 풍경 아닌가. 아닌가? 내 경우는 여섯 살과 한 살 짜리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첫째는 혼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하는 시간이 늘었지만, 둘째는 아직 숨쉬고 싸는 것 외에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옆에 있어줘야 하는 시간이 많고 그럴 때면 난 자연스럽게 아이폰을 들고 뭔가를 본다. 그리고 만약 아이패드가 있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텐데라고 종종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기사('The Risks of Parenting While Plugged In')는 내게 '아이한테 그러면 안돼.'와 같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생각해 보자. 비록 한 살(정확히는 7개월)이지만 아빠와 눈맞추고 관심 받고 알 수 없는 소리로 대화하고 볼을 부비고 싶을 것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조금씩 더 엄격하게 대하고는 있지만 첫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지켜봐 주는 것이 좋고,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아빠가 읽어주는 걸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작은 스크린만 쳐다보며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모-자식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안아 자기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에게 말을 할 때는 책의 단어 뿐 아니라 애정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해결책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의 신화 따위는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 시간 동안에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것. 아이패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말이다.

2-55-7: 쓰기, 말하기, 듣기

Writing Notes with Grammy"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이런 말을 하셨었다. '작가가 될지 안 될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야.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작가가 되거나 글을 쓰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 둘 중 하나일 뿐이란다.' 엄마도 분명히 아셨겠지만 그때 내게 말하지 않으신 건, 작가인데도 글을 쓰고 있지 않다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신의 은총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길기도 하다. 그래서 인생은 사무엘 베케트의 유명한 명령을 따를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준다. '실패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성공하려면 실패해야만 한다. 실패하기 위해서는 시도해야만 한다. 시도하기 위해서는 출발선 위에 서야만 한다. 종이에 옮겨진 나의 좁고 근시안적인 세계관을 모두가 비웃는 것을 각오하고서 말이다. 글 자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하고 불완전한 삶이 글을 쓰는 삶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작가가 되는 것이다." ('On Writing, Not Writing, and the Writing Life')

글을 쓰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강박. 문학청년을 꿈꾸고, 책을 내고, 어떻게든 문단의 말석에라도 이름을 올리고 싶은, 또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글만 쓰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구. 그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숭배하고 그들의 새 책이 나오면 따지지 않고 경쟁적으로 사 읽고, 읽기만 하다가 쓰는 방법은 잃어버리는. 이쯤되면 글이란 게 다 뭐람하는 생각과 함께 내 글쓰기 욕망 같은 건 참 생뚱맞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볼 수록 소외된달까. 자, 내 자신으로 돌아오자.

최소 사항은 이거다: 난 글을 쓸 때 가장 흥미롭고 만족하고 행복하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글을 써라. "안 쓰면 행복할 수 없을 거야."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자신부터 행복해지렴 — 뻔하지만 맞는 말. 아내와 싸우고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피곤하고 회사일이 잘 안 풀리고 이번달 카드 결제일이 걱정되어도 그런 것들이 날 쓰게 만든다는 걸 항상 기억하는 것. 이게 비록 날 시인이나 소설가로 만들어주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행복할 순 있다는 거. 그런데 행복 앞에 최소한을 붙이는 건 건방지잖아.

어렴풋이 작가 같은 것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대학 겨울방학 때였나. 과제 때문이었는지 태백산 기슭에서 열리는, 물론 혼자이거나 친구들과였다면 안 갔을, 굿 경연대회 같은 것을 보러 갔다. 잠깐 보고는 서울로 가리라며 지켜보다가 홀딱 빠져들었는데, 이런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은 이 기사에 나온 천태산의 거대한 은행나무 때문이다. 그 무당 할머니들은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원초적 자연, 날것, 생명, 경외 그런 것들과 연결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은, 내 안의 서글픔을 흐느끼며 털어놓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 무당 할머니들은 몇 분이나 살아 계실까. 올겨울에 보러 가고 싶다, 이 은행나무.

"스파르타 주민들은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laconic(간명한, 말수가 적은)’이라는 단어 자체가 스파르타를 둘러싸고 있던 라코니아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도 그들의 분위기가 잘 읽힌다." ("‘욥기’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는…")

'laconic'을 영어사전(네이버)에서 찾아보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할 말만 하는"이라는 뜻과 함께 예문을 보여주는데 재밌다. "If you describe someone as laconic, you mean that they use very few words to say something, so that they seem casual or unfriendly." '할 말만 하면 불친절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난 이게 뭔지 안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다. 내가 밥을 먹는다. 옆에 어른이 계신다. 식사하셨냐고 물어보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핀잔을 듣는다. 근데 나는 그 분이 식사하셨다는 얘기를 아까 들었다. 왜 물으나마나 한 소리를 해야하냐고 묻는다. 빈말이라도 하는 거라는 대답을 듣는다.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자꾸 핀잔을 듣다보니 왠지 물어야할 것 같고, 어른이 된 지금은 묻는다. 물으면서도 궁금하지는 않다. 그냥 인간관계의 기름칠 같은 거라고 생각할뿐이다.

이런 거 많다. 좀 친해지면 미혼들에게 애인 있느냐 결혼 언제 하느냐고 묻는 것.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사실대로 구체적인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하는 일은 잘 되시구요라고 묻는 것. 평소에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새해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 같은 것(그것도 새해, 설날 두 번씩이나). 모두 필요한 말,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화난 것처럼 보인다지만, 말을 많이 하면 내 스스로가 싫어진다. 그래서 난 친구가 적다. 그게 좋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가족들과는 할 말이 많아야 한다. 특히 아내와는(이건 자기검열이 아니다). 이건 할 말이 많은 좋은 남편/아빠와 할 말이 없는 좋은 남편/아빠 중에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할 말이 많은 좋은 남편/아빠와 할 말이 없는 나쁜 남편/아빠의 문제다.

사실 난 듣는 게 좋다. 스스로 청각이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청력검사를 해봐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음악도 좋아한다. 그런데 기백만 원씩 들여서 오디오 시스템을 장만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때그때 분수에 맞는 것으로 즐겨와서인지 크게 욕심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듣는 장르도 다양해지고 좋은 기계로 한 두 번 들어보니 PC-Fi 시스템을 구축해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하이파이(Hi-Fi)가 아니라 PC-Fi인 이유는 컴퓨터와 친숙하다는 이유도 있고, 하이파이 매니아의 '오명'은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그 세계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PC-Fi로 본 융합의 현주소'에 나온 것처럼, 내 경우 역시 씨디를 사더라도 리핑한 이후에는 다시 씨디를 찾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질을 따지기는 힘들지만, 해외 인터넷 라디오에서는 국내에서 듣기 어려운 음악을 24시간 들려주고 있고, 그걸 피씨 스피커로만 듣는 것이 아쉽다. 한때 씨디를 모으기도 했지만 난 책 모으는 것 외에는 애착이 안 생기므로 씨디에까지 방 공간을 내주기가 싫다. 올해 이사 후 씨디들은 침대 밑 박스 안에 '그냥' 있다. PC-Fi가 대중화되어도 기본적인 스피커 가격은 안 내려가겠지만 그 외의 기기들이라도 가벼운 가격이 되어서 내 장기 프로젝트인 '거실에 오디오 시스템 구축하여 이웃 눈치 안 보고 음악 크게 듣기'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에버노트와 A5 카드 이용하여 정리하기

지난주 한 기관에서 두 시간 가량 강의를 했다. 강의 내용을 준비하며 에버노트와 A5 카드에 정리해 봤는데 만족스러웠다.

에버노트(Evernote)

  • 주로 웹에 올라와 있는 자료들을 수집할 때 사용했다.
  • 에버노트 플러그인을 설치했다면, 웹브라우저에 뜬 내용 중 필요한 부분만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선택한 후에 'Add to Evernote' 해주면 바로 저장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 무료 버전도 PDF 파일을 저장할 수 있고, 에버노트에서 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PDF 문서 관리에도 매우 편리했다(유료 버전은 각종 파일을 모두 저장할 수 있다).
  • 에버노트에서 제공하는 고유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내면 자신의 에버노트에 저장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을 이용하여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가령, QR 코드를 이용한 마케팅 사례)을 이메일로 보내서 쉽게 저장했다. 기존에는 찍어만 놓고 잊는 경우가 많았다.
  •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자료는 일단 저장한 후에, 강의 구성에 따라 '노트북'(에버노트의 폴더 개념)을 세 개 만들어 놓고 자료를 분류했다. 이렇게 하니 나중에 검토할 때 강의 진행에서 필요 없는 자료가 눈에 잘 띄였다.
  • 요샌 당연한 것이 됐지만, 어플리케이션, 웹, 앱 모두를 지원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

A5 카드

  • 보통 독서 카드, 정보 카드, 메모 카드, 인덱스 카드 등으로 불리는 카드이다.
  • 다양한 크기가 있는데, A4 크기의 절반인 A5 카드를 이용했다. A5는 정리할 수 있는 이공 바인더 파일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정리하기가 편리하다. 더 작은 카드는 내용을 기록하는데 불편할 수 있다.
  • 여러 브랜드에서 나오는데 모닝글로리에서 나오는 카드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영풍문고에는 모닝글로리의 다른 크기 카드는 모두 있는데 A5는 없다). 이공 바인더 파일에 정리할 수 있도록 구멍이 두 개 뚫려있다. 가격은 링 두 개 포함하여 한묶음에 3천원 가량이다.
  • 강의 시 활용을 위해서 내용은 뒷면에 쓰고, 앞면에는 지시 사항을 썼다. 가령 이번 카드 내용은 '화이트보드를 이용'한다든가 '파워포인트를 이용'한다든가.

파워포인트만으로 진행되는 강의는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도 항상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대부분은 화이트보드에 판서를 하며 진행하고, 시각 자료가 꼭 필요한 내용만 파워포인트로 작성하여 진행했다. 카드에 지시 사항을 적어 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왔다갔다 하니까 조금 혼동이 있었다. 더불어 강단에 조명을 껐다켰다 해주신 분이 좀 애먹으신듯 하다.

스스로 세운 자료 정리 원칙이 온라인에서 얻는 자료는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오프라인 자료는 A5 카드에 저장하는 것이다.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가령, 책에서의 인용은 카드에 기록하는 식이다. 컴퓨터에서의 빠른 검색은 안 되지만 카드들을 주르륵 넘기면서 얻는 다른 것들이 있고, 한켠에 쌓여가는 카드들을 보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