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42 (6:24)

안녕하세요, 호찬입니다. 녹음 오랜만에 올리네요. 그거 좀 쉬었다고 버벅대는군요.
새로 산 영한사전 자랑했습니다.

[podcast]http://hochan.net/uploads/2009/04/hello20090421.mp3[/podcast]

추가: 《옥스포드 영한사전》에 대한 시사인 기사(“오류투성이 사전 아직도 쓰십니까“)가 있었네요. 지금까지 이렇게 엉터리 사전들을 보고 있었다니 좀 어이없네요. 이제 인터넷 포털 영한사전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겠습니다.

인사 41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정상 음악 선곡만.

첫 번째 곡은 요즘 광고에 나오고 있는데 자꾸 귀에 걸려서요, ‘On the Radio’라는 곡. 두 번째 곡은 사람 목에서 이렇게 낮은 소리도 나올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준 배리 화이트의 ‘유 아 더 퍼스, 더 라스트, 마이 에브리씽’인데 U.S.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 유혹할 때 많이 나오더군요. 효과가 있나보죠?

그래도 오늘은 미네르바 무죄 선고 뉴스 때문에 기분이 좋았네요. 그리고 검찰에게는 양심의 자유가 허락 안되나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 40

안녕하세요, 호찬입니다. 마흔 번째 인사네요.

요즘 전세계적으로 트위터에 대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로 이어지는 열렬한 국제적 호응을 받으며 새로운 현상과 활동들을 보여주는 서비스여서 그렇겠죠. 찾다보니 흥미로운 뉴스가 하나 있군요. “트위터, 정서 발달에 악영향 끼쳐“.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뇌, 뉴미디어, 정서 등과 관련된 최근의 뉴스들을 연결시켜 보면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 뜬금 없지는 않습니다.

이 연구는 트위터, 뉴스 속보와 같이 거의 실시간으로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것들에 대해 뇌가 충분한 판단을 할 수 없고, 그것은 도덕적, 정서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 영국에서도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어린이의 정상적인 두뇌 발달을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제기됐죠. “이마 바로 뒤인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서 한다고 열려진 이 21세기형 창조적 기능들은 ‘사회화가 많이 될수록, 또 일찍 사회화될수록’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아도 근거가 있어 보이구요.

처음 언급한 트위터에 대한 연구 결과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이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과 같은 일들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논리와 비슷하다는 것이죠. 또 뇌에 대한 연구가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 논문도 있는 등 트위터 연구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제가 우선 짚어보고 싶은 것은, 트위터를 쓰고 뉴스 속보를 읽으며 사는 우리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는 것이죠. 자신의 뇌에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정보과부하 상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정말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선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도덕적, 정서적 판단의 문제와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능률이나 생산성의 문제에 있어서 트위터나 뉴스 등이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습니다. 특히 인터넷 관련 업무와 같이 많은 정보를 다루는 일을 하는 분들은 종종 또는 지속적으로 주의산만, 집중력 부족, 정보과부하, 자발적인 방해요소, 미루기, 압박감, 무기력 등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런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려는 노력 보다는, 새로운 매력의 서비스에 푹 빠져 일단 써보고 생각은 나중에 해보자, 이 인터넷 바닥 생활이 몇 년인데 이 정도 서비스로 내 뇌가 망가질까, 청소년 뇌도 아닌데라는 태도인지 말입니다.

써놓고 보니 후자가 부정적으로 느껴지긴 합니다만 양쪽 모두 객관적으로 관찰한 후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10년이 넘게 인터넷 일을 하며 앞에서 언급한 부정적 현상들을 머리 속 깊이 느끼고는 있지만 그것이 인터넷 탓인지 타고난 제 성향 탓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습니다.

전 요즘 오프라인으로 회귀하는 도구가 몇 가지 있는데 만년필과 노트, 종이 영한사전입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려면 펜을 잡고 종이를 마주해야 가능합니다.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안나고 어느새 다른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펜과 종이가 스치는 그 느낌은 손을 타고 뇌를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종이 사전은 예전 중고등학교 시절 종이를 뒤적대며 찾던 촉감과 냄새, 손에 익은 사전은 신기하게도 펼치면 바로 찾는 단어가 나오는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어서 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행동들이, 저의 지친 뇌가 기억하고 있던 최상의 경험들을 끄집어 내고 있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해도 그 속도는 한 가지도 아니고 일정하지도 않을 겁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 39

안녕하세요, 호찬입니다. 2009년 4월 16일 서른아홉 번째 인사입니다. 목소리는 이제 별 이상이 없는데 가끔씩 기침이 터져 나와서 녹음은 다음주부터 할게요.

오늘 “포털, ‘기사배치는 편집권’ 판결 당혹“이라는 뉴스가 있었죠. 이제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었으니 포털 입장에서는 앞으로 뉴스 서비스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가 큰 골치거리겠습니다. ‘기사 배치는 편집이 아니다’라는 포털의 기존 주장은 최소한 법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구요. 그런데 만약 포털이 뉴스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뉴스를 보기 위해 포털에 오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사용자들은 불편이 있겠죠. 포털이 잃는 것이 만다면 어떤 형태로든 뉴스 서비스를 계속 하겠지요. 그러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뉴스 검색의 편리함 외에는 크게 잃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구요.

오늘 음악은 시오엔의 ‘크루징’, 제임스 모리슨의 ‘유 기브 미 섬씽’, 레미 쉔드의 ‘테이크 어 메시지’ 세 곡입니다. 예전에 많이도 들었죠. 언제 들어도 좋구요. 특히 레미 쉔드는 처음 나왔을 때 “아니, 백인이 소울을 이렇게 잘 할 수도 있단 말이야!”라는 극찬을 받은 뮤지션이죠. 그런데 그 후로 7년이 지났는데 새 앨범도 안나오고 감감무소식이네요. 1978년생이니까 나이는 31살 밖에 안됐으니 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할 수 있겠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크게 성공해서 망가져 버린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돌아와, 레미!


안녕히 계세요.

트위터를 쓰다보면

트위터를 쓰다보면 내가 친구로 등록해 놓은 사람들(“following”)끼리 서로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내 친구인 김 모씨와 이 모씨는 서로 전혀 모른다. 그러나 내 공간에서는 둘이 하나의 공간에 묶여있다. 내가 쓰는 글을 둘 다 본다. 내가 임의로 설정한 커뮤니티가 된다. 유일무이한, 나만의 고유 공간이다. 카페 서비스처럼, 가입한 특정 카페마다 다른 정체성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 단일한 정체성만 흐르게 하면 된다. 관계와 관리 모두 단순하다.

추가(2009.4.23):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Study: People manage their privacy on Facebook naturally“)가 나왔다.

인사 38

한국법 안지키려는 얌체 유튜브‘를 읽고 여전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갑갑함이 밀려오는데 댓글을 읽다보니 ‘청와대 행정관’이 되었다하고 벌써 그에 대한 ‘청와대 행정관, 블로그에서 유튜브 비난 논란‘ 기사가 떴는데, 당사자의 코멘트는 요즘 시대정신을 좇아 소신을 소통이라 우기고 있고 블로그 댓글에서는 허허실실거리며 “인신공격성 발언에 대해서는 결코 여유로운 모습 보이지 않겠습니다”라며 반격을 암시하고 있으니 자판용자들은 그저 침만 삼키며 지나간 흔적들이 눈에 선한데, 정부 부처 블로그들이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블로그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복지부와 국방부가 파워 블로거라고?‘ 시사IN 기사를 보고 갑갑함이 더해가던 중, 그람시의 ‘문화’와 ‘헤게모니’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내놓은 케이트 크리언의 《그람시, 문화와 인류학(Gramsci, Culture and Anthropology)》에 대한 서평 <“문화”를 맥락 속에 놓기> 번역을 읽고 나니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인데, 가령 “크리언은 문화에 대한 그람시의 관심이 혁명적 변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생활하는 방식이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실행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상상하는 능력을 필연적으로 모양 짓기” 때문이다(p. 71).”라든가 “또한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술어를 혁명적 정당들이 투쟁들을 연계하고, 터득한 교훈들을 일반화하고, 마침내 사회를 변혁하는 데 필요한 신뢰할 만한 지도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 운동과 실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람시에게 헤게모니란 사회적 관계, 실천적 행동, 동의, 힘과 관념이 복합적으로 혼합된 것이었다. 그런 다음 크리언은 그람시를 끌어들인 것으로 잘 알려진 인류학 저술 세 편에 이러한 비판을 적용하여 그람시에 대한 두루뭉술한 이해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논증한다.”와 같은 구절은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줌과 동시에 문화는 단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해주는데, 이제 단발적인 반항이 아니라 일상적인 저항으로서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겠다.


links for 2009-04-15

인사 37

안녕하세요, 호찬입니다. 2009년 4월 14일 화요일 서른일곱 번째 인사입니다. 오늘도 필담으로 대신합니다.

오늘 신문에서 코스타리카에 대한 기사(‘경제성장 + 생태보전’ 코스타리카를 보라)를 봤습니다. 20년 전에 이미 환경과 경제 성장의 균형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군대가 없다는 것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대체 이런 나라가 있기까지 어떤 지도자들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읽고 바로 ‘코스타리카 이민’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한국 교민은 많지 않은 것 같고 이민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를 계속 예의주시하렵니다. 스페인어도 틈틈이 익혀볼 생각이구요. 4년만 더 버티면 되겠지 했는데, 요새는 그게 9년으로 바뀌어 가나봅니다. 모르죠. 중간에 개헌이 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마음도 가라앉힐겸 오늘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골라봤습니다. 저는 카톨릭 세례를 받기는 했으나 현재는 종교가 없습니다. 신앙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없다고 확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음악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군요. 어찌하다보니 이것도 사게 됐네요.

다른 것은 모르겠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무턱대고 드는군요. 그게 쉽지 않네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