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12: 편지

마음이 어지러울 땐 김구용 선생의 《인연》을 읽습니다. 그의 글은 화려하거나 꾸미거나 젠체하지 않습니다. 아픈 대로 기쁜 대로 겪은 대로 씁니다. 읽다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람이 직접 쓴 글씨를 중히 여겼나봅니다. 연하장을 정성껏 주고 받는 대목이 인상 깊습니다. 붓글씨로 쓰거나 직접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하고 말입니다. 작년말에 고마운 분들께 연하장을 보내보려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제 게으름 때문이었지만, 집주소를 묻는 것도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번잡하게 나돌던 ‘단체’ 이메일이나 핸드폰 문자 연하장이 줄어든 것을 보면 이제 사람들도 벌어져버린 감정의 틈이나 회의 같은 것을 느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절이고 사람들의 고통도 그만큼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한 학교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들으며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다 그만둡니다.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습니다. 자식을 낳아보니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크는 것이 얼마나 큰 효도인지 알게 됩니다 한 사람이 별다른 사고나 병 없이 늙어죽는 일이 기적 같이 느껴집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은 어떻게든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아직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서둘러 스스로 죽어간 그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말해줄 수 있었을까요? 역시 우린 바쁘고 해야할 일이 많고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니다.

나와 똑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열 명 남짓이나 되려나요. 처음에는 똑같은 줄 알았지만 부대끼다보면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정말 꼭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최소한 ‘공동’의 무언가가 있을까요? 인터넷에 접속해 같은 뉴스에 같이 화를 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버튼을 누르거나 댓글을 남기는 일 밖에 없습니다. ‘전체’가 아니라 크고 작은 ‘공동’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이 멀리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있게도 해줬습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지켜보면, 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인터넷이, 크고 작은 공동의 것을 만들고 그것으로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단지 도구일 뿐인 인터넷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있느냐, 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유일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유행하는 SNS나 카페가 그 단초일 수도 있고 자본의 탐욕 때문에 엇나간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두고 봐야겠습니다.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메일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쓴 편지말입니다. 방사능 비로 우울한 마음들을 달랠 수 있게요. 요즘 기념우표의 가격은 250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