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38

한국법 안지키려는 얌체 유튜브‘를 읽고 여전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갑갑함이 밀려오는데 댓글을 읽다보니 ‘청와대 행정관’이 되었다하고 벌써 그에 대한 ‘청와대 행정관, 블로그에서 유튜브 비난 논란‘ 기사가 떴는데, 당사자의 코멘트는 요즘 시대정신을 좇아 소신을 소통이라 우기고 있고 블로그 댓글에서는 허허실실거리며 “인신공격성 발언에 대해서는 결코 여유로운 모습 보이지 않겠습니다”라며 반격을 암시하고 있으니 자판용자들은 그저 침만 삼키며 지나간 흔적들이 눈에 선한데, 정부 부처 블로그들이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블로그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복지부와 국방부가 파워 블로거라고?‘ 시사IN 기사를 보고 갑갑함이 더해가던 중, 그람시의 ‘문화’와 ‘헤게모니’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내놓은 케이트 크리언의 《그람시, 문화와 인류학(Gramsci, Culture and Anthropology)》에 대한 서평 <“문화”를 맥락 속에 놓기> 번역을 읽고 나니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인데, 가령 “크리언은 문화에 대한 그람시의 관심이 혁명적 변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생활하는 방식이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실행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상상하는 능력을 필연적으로 모양 짓기” 때문이다(p. 71).”라든가 “또한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술어를 혁명적 정당들이 투쟁들을 연계하고, 터득한 교훈들을 일반화하고, 마침내 사회를 변혁하는 데 필요한 신뢰할 만한 지도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 운동과 실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람시에게 헤게모니란 사회적 관계, 실천적 행동, 동의, 힘과 관념이 복합적으로 혼합된 것이었다. 그런 다음 크리언은 그람시를 끌어들인 것으로 잘 알려진 인류학 저술 세 편에 이러한 비판을 적용하여 그람시에 대한 두루뭉술한 이해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논증한다.”와 같은 구절은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줌과 동시에 문화는 단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해주는데, 이제 단발적인 반항이 아니라 일상적인 저항으로서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겠다.


인사 31 (5:43)

저항, 기동전, 포위공격, 진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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