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태그가 붙은 글
2-55-15: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문제
'아이패드용 잡지가 살아날 방법'(iPad publishing: time to switch to v2.0)'이라는 유용한 글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항상 좋은 글을 번역해 주시는 애플포럼의 casaubon님께 감사). 만약 국내의 컨텐츠 또는 e북 업체가 이 글에 등장한 퓨 리서치 센터의 보고서를 참고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과 미국은 인구통계학적 구성, 사회의 물적 토대와 문화, 미디어/컨텐츠 산업의 배경과 규모 등등 모든 것이 다르고, 일치하는 것이라고는 사람이라는 것과 아이패드를 쓴다는 것 정도이다. 다시 말해, 네트워크의 구성과 질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아이폰, 애플 앱스토어, 그리고 '앵그리버드'와 같은 앱처럼 세계적 성공을 거둔 사례, 매우 다른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면서도 각자의 목표(상업적 성공 등)를 달성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음의 절차를 거치면 어떻게 될까?
- 성공적인 네트워크 사례를 가져온다.
- 해당 사례를 분석해서 국내에서 동일하게 활동하는 구성요소(행위자)와 다르게 활동하는 구성요소(행위자)를 찾아낸다.
- 다르게 활동하는 것을 국내의 네트워크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여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든다.
- 이 해석과 적용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온다.
- 동시에 이 작업을 한 사람/업체와 방법 역시 네트워크의 새로운 구성요소(행위자)로 편입된다.
- 1번의 네트워크와는 전혀 다른 네트워크가 된다.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다시, 자신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만든다(스티브 잡스처럼?). 복불복, 수업료 등등이 떠오른다.
결론은, 해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결과를 운에 맡기는 일이고, 추가로 필요한 분석 없이 인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이다.
2-55-6: 행위자네트워크이론, 온라인/오프라인, 창의적인 혁신가
책을 읽다 충격적인 그림을 만났다. 지금까지 조각나 흩어져 있던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들이 서로 포옹하며 키스하는 기분이었다.
"연결을 고려하면, a는 b보다 e에 더 가깝다."
이 책 《인간‧사물‧동맹》이 다루고 있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의 '네트워크'는 인터넷 분야나 업계에서 말하는 네트워크 개념과는 다르다. 후자는 주로 컴퓨터 통신망이나 사람들이 통신망을 통해 연결된, 연결망을 말하는데, 전자는 "실재하는 연결망이 아니라", "행위자들의 '연합'(association)의 효과" 이고, "행위자는 언제나 행위자인 동시에 네트워크"라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만드는 데 주된 역할을 한 브루노 라투르는 이 '네트워크'는 컴퓨터 네트워크나 사회적 네트워크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ANT는 인터넷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위의 그림으로 돌아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해 보자.
네트워크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의 첫 번째 이점은 '거리의 횡포' 또는 근접성을 제거한다는 데 있다. … 나와 옆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누군가의 거리는 1미터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6천 마일 떨어진 어머니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 내 아들은 학교에서 동갑내기인 어린 아랍 소년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지만, 1학년 때 이런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중에는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게 될 세계에서 표류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 네트워크 개념은 우리가 공간을 정의하는 데서 지질학자들의 횡포를 걷어내는 것을 돕고, 우리에게 사회적이거나 '실제'의 공간이라는 관념이 아닌 관계라는 관념을 제공한다.
이 개념들을 이용하여 내가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인터넷 중심의 오래된 메타포를 걷어내는 것이다. 알다시피, 온라인은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나 공간을, 오프라인은 그렇지 않은 상태나 공간을 가리킨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 이 메타포가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물음을 던져보자.
컴퓨터 앞에 앉아 웹 브라우저,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다. 온라인 상태이다. 컴퓨터를 끄고 외출을 했다. 오프라인 상태다. 그런데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지금은 무슨 상태일까? 이른바 '항상 온라인'(Always-on)인 상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본질적인 의문을 가져본다. 내 육체는 항상 오프라인 공간에 존재하고, 온라인 공간에 진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신만이 온라인 공간에 진입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온전한 내가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내 몸의 일부처럼 항상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쥐고 있는, 언제든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 나를 항상 온라인 공간에 연결시켜 놓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바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이분법 메타포의 경계가 흐려지거나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이제 이 낡은 메타포를 폐기함으로써 더 많은 행위자들을 네트워크로 초대하여 더욱 풍성한 설명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ANT의 7가지 테제를 살펴보자.
- ANT는 경계 넘기를 꾀한다.
- ANT는 비인간(nonhuman)에 적극적 역할을 부여한다.
- ANT의 행위자는 곧 네트워크(network)이다.
- 네트워크 건설 과정이 번역(translation)이며, 번역을 이해하는 것이 ANT의 핵심이다.
- 네트워크를 잘 기술(description)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론이다.
- ANT는 권력(power)의 기원과 효과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 ANT의 '사물의 정치학'은 민주주의를 위해 열려 있다.
인터넷, 특히 웹의 초창기에는 이 온라인/오프라인 메타포가 제법 쓸모 있었다. 이 둘의 상관 관계나 사용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오프라인'에 이미 있던 서비스나 사업모델을 '온라인화'하는 것이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시행착오를 거치고, 몇 개의 서비스들만이 살아남았다.
이와 관련하여 ANT가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참고할만하다. "기술의 효과, 용도, 의미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은 예측하지 못했던(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술이 처음에 발명되었을 때 속한 네트워크와는 다른 네트워크에 편입되면서,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효과, 용도,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기술의 발전에 맥락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만이 아니라 기술의 사용자도 기술의 발전과 변화를 낳는 중요한 주체라는 것"이고, "어떤 특정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전하고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혁신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예상하는 예언자의 능력이 아니라, 기술의 궤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외의 결과에 당황하지 않고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 과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 속에서 과거에는 없던 인간-기술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기술을 새롭게 위치시키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2-55-2
페이스북, '오픈' 단상
('KISDI'라고 쓰고 '키스디'라고 읽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보고서 몇 개를 내놓았는데, 눈길이 간 것은 <SNS에 나타난 취업희망자의 성향조사와 프라이버시 이슈>(유지연)와 <페이스북의 부상(浮上)과 시사점>(공영일)인데 그 중 두 번째 것을 읽었습니다. 모두 10페이지이고 내용은 현황, 성장요인, 향후 전망, 시사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 세계 1위 SNS 사업자이고,
- 2010년 6월 기준으로 5억 명에 가까운 회원을 가지고 있는데
- 1억 명이 증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 시장점유율은 이미 구글을 넘어섰고(2010년 3월 U.S. 1년간 방문수 기준),
- 모바일 인터넷 시장 진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글로벌 온라인 사이트 중 방문수 기준으로는 3위이지만, 체류 시간 기준으로는 월등한 1위(인당 6시간)라는 것입니다(2010년 4월 기준, 9개 국가 대상). 이건 양적, 질적 모두 압도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나머지 내용은 다른 곳에서도 본 듯한 것이니 읽어보면 아실테구요).
성장 요인으로 들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페이스북이 도입한 다양한 오픈 전략들(오픈 API, 페이스북 커넥트, 오픈 그래프 등)인데 이 '오픈'이라는 것이 듣기에도 괜찮고 뭔가 좋은 일 하구 있구나 싶은 느낌을 줘요. 이른바 '개방, 참여, 공유를 지향하는 웹 2.0'의 동굴을 통과하며 많은 서비스들이 쓴맛, 단맛 봤을 텐데요, 이제 와서 보면 그게 일종의 '화장' 또는 '위장막'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실 이 '오픈'이 오픈 소스 운동의 '오픈' 같은 의미는 아니잖아요. 사업자, 사업 파트너, 광고주, 회원의 이해 관계를 적절히 조정해서 관리할 수 있을만큼 '오픈'하는 것이죠. 외부 네트워크와의 연결 고리를 많이 만들어 놓을 수록 네트워크 효과도 생기고 이익이 되니까 하는 것이기는 한데, 이 '오픈'에 사업자의 장삿속이 지나치게 드러나면 서비스 이미지에도 안 좋고 사람도 안 모이고 돈도 못 벌겠죠. 그래서 '웹이 나아갈 옳은 방향'으로 포장된 '웹 2.0'이 그런 장삿속을 적절히 가려주고 이미지 관리도 해주는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말해, '오픈하면 좋은 서비스, 좋은 회사' 뭐 이런 식.
3~4차원 네트워크
제가 생각하는 페이스북의 성장 요인은 다양한 종류의 네트워크를 3차원(입체적)으로 겹쳐서 잘 연결시킨 것에 오지 않았을까 합니다(무슨 말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구요). 그 유명한 《링크Linked》 같은 책을 봐도 노드, 허브, 각종 네트워크 등등을 2차원(평면적)으로 그려놓았잖아요. 그런데 이제 현실의 네트워크를 파악하는데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문외한으로서 감히 해봅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페이스북만 보더라도
- 회원 네트워크가 있고,
- 친구 추천, 친구의 친구 추천 등을 통해 네트워크를 계속 생성, 연결시키고,
- 또 그 회원들은 서비스 밖에, 언제든지 페이스북 회원으로 만들 수 있는 친구들(네트워크)을 가지고 있고,
- 서비스 밖의 네트워크라하면 페이스북이 아닌 다른 인터넷 서비스(예를 들어, 지메일Gmail)의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 학교 친구나 동네 친구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 어떤 회원들은 외부 어플리케이션 개발자일 수도 있고,
- 상품 마케팅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회원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균질하다고 보기에는 워낙 다양한 네트워크가 겹쳐져 있다는 것이죠. 실험실 안의 네트워크가 아니니까요. 이미 다변화된 공간이라는 요소는 끼어들었고, 시간이라는 요소(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까지 끼어들면 어떤 네트워크가 될지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요즘 너도나도 SNS 마케팅 해야 한다고 하던데, 성공 사례가 흔치 않은 것은 상품 마케팅만을 위한 1차원적 활동으로는 이 네트워크의 변화를 탈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함께 대화하라"는 계명이 말은 쉽죠, 꾸준히 지켜보고 활동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죠.
공간, 욕망, 반영웅
머리가 살짝 아프군요. 잘 정리된 방 사진을 보며 머리를 정리합니다(이미지 출처: Wired).
이렇게 잘 정리된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면 부럽다가도 현실을 생각하면 말이죠, 방도 커야 해, 집도 커야 해, 그럼 당연히 돈 많이 벌어야 해. 욕망의 펌프질과 악순환. 물론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꾸미는 것을 표방하는 블로그들도 꽤 있어요. 그러나, '너네들은 이 정도 크기를 작은 공간이라고 부르냐'라는 생각이 들며 울컥. 한국적 서민형 'Apartment Therapy' 같은 블로그가 시급히 필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얼굴 없는 천사 또 1억 기부' 같은 기사를 보게 됩니다. "뭘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어릴 때 모진 고생을 잘 이겨내시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신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기부하는 것뿐입니다." 짧은 몇 마디이지만 이 분의 아버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교육, 부모에 대한 자식의 존경, 신념의 실천 등 많은 것이 가슴을 스치웁니다.
설명서 만들기 2: 내용, 형식, 활동
이 동영상은 레드팡닷컴의 실질적인 얼굴마담(명함으로만 얼굴마담이 있어서 구분을 위해)이자 기타리스트인 션의 공연 녹화이다. 그런데 끝까지 보셨는가? 몇 분까지 보셨는가? 나는 션과 직장 동료이고, 션으로부터 기타를 배울 계획이고,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몇 번씩 봤다. 그러나 대부분 인터넷 동영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긴 시간 보기 어렵다.
이 '좋아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섹시한 이성(또는 동성), 귀여운 동물, 충격적인 사건사고, 아름다운 음악, 멋진 춤 등등 사람의 수만큼 많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에 집중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프라인 네트워크, 이를테면 서점, 방송, 영화, 전시 등 각각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배포한다. 이 네트워크는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내용이 — 무엇이 기준인지는 알기 힘든 — 수준에 미달하면 파티 초대장을 받을 수가 없다.
자, 그러나 우리에겐 인터넷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무한한 네트워크 자원이다. 역시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자신이 만든 글, 사진, 동영상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내용의 수준은 문제되지 않는다. 우연히 사람들의 관심과 일치하면 그만큼 많이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저마다 터득한 네트워킹 기술을 이용하여 그 효과를 크게 만든다. 이를테면 대형 포털에 블로그나 갤러리를 만들어서 검색에 노출시키기, 다음 뷰 같은 평판 필터링 서비스에 가입하여 컨텐츠 배포하기, 동영상/사진 전문 서비스에서 활동하기, 트위터 같이 사람 사귀기와 컨텐츠 유통의 속도가 빠른 서비스에 참여하기 등등이 있겠다. 이것은 네트워크의 형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약하자면, 사람이 내용(컨텐츠)을 가지고 형식(서비스)에 뛰어들어 활동(네트워킹)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도식적인 구분이다. 이 세 개는 얽히고설켜 있고 함께 변하고 있다. 다만 내용이 가장 천천히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 관심사는 이것이다: 이 형식과 활동에 최적화된 내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 변화를 겪었듯이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인가?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 질문만 꼬리를 물 뿐이다.
안드레아스 위텔, <네트워크 사회성을 향하여>, 2001
이 글은 현재 사회적인 것의 몇몇 변형들을 검토한다. 그리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사회성 모델로부터 네트워크 사회성을 향한 변화를 주장한다. 이 변화는 특히 도시 공간들과 문화 산업들에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보 사회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전형적인 것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이 글은 문화적 가설로 읽혀야 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네트워크 사회성의 발생을 기록한 몇몇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 사례들의 대부분은 2년간의, 런던 뉴미디어의 민속학적 연구로부터 나온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사회성의 현대적 변형들의 몇몇 이론적 설명들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부분은 네트워크 사회성 개념의 윤곽을 그려보려는 시도이다. 순식간이지만 강렬한 것이 사회성의 형식이다. 그것은 정보적이며 기술적이다. 그것은 일과 놀이를 결합한다. 그것은 이탈하며(disembedded)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화의 맥락에서 드러난다.
핵심어: 후기 자본주의, 네트워킹, 뉴미디어, 관계들, 사회적 자본, 도시 공간들
(Andreas Wittel, Toward a Network Sociality, 2001의 요약을 번역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