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5: 좌담회, 일기

지난 수요일(8.18)에는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출간 기념으로 열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 좌담회를 다녀왔다. 좌담자는 강유원 선생님, 김영건 선생님, 이유선 선생님이셨다. 세 분 모두 존경하는 철학자들이시다. 기억에 남는 것은, 세 분 모두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오셨음에도, 한국에서 철학 뿐만 아니라 ‘학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 힘들 것이라고 담담히 말씀하시던 것, 대륙철학과 영미철학 모두를 넘나드는 ‘양손잡이’가 되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 세 분이 각자 다른 분야의 철학을 전공하셨지만 핵심과 방향에 있어서는 크게 동감을 이루고 계신 것 같았다는 것이다(하비 맨스필드에 대한 호오는 제외하고).

이유선 선생님은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는 부분은, 남이섬으로 가족 소풍을 간 일화가 등장하는 ‘마음의 존재 –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정영문 《달에 홀린 광대》’ 편이다. 좌담회 중 강유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답답하리만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철학과 만나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흥미로운 충격이었다. 왜? 나의 지리한 일상도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이, “하나 하나의 글들이 세 토막짜리 형식”을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거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철학적인 개념이나 문제에 대해서 철학자 혹은 철학책과 함께 간단히 언급하고, 그런 개념이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는 문학작품에서 몇 구절을 가져와 연결지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좌담회에서도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밝힌 참석자들이 이유선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했다.

이유선 선생님은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라 지적)을 계승하여 네오프래그머티즘으로 재창조한 리처드 로티에 대한 책인 《리처드 로티》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을 참고하면 왜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라는 제목이 만들어졌고, 세 토막짜리 형식을 갖게 되었는지 눈치 챌 수 있다. 일부 인용해 보겠다.

  문학적인 문화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개념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난 문화이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창조자이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진리에 대한 창조자이다. 누구나 자신의 메타포를 가지고 저마다의 삶을 뽐낼 수 있도록 배려되는 문화이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진리를 타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천에 대한 책임을 인간을 넘어선 어떤 것에 돌리지 않는다.
  문학적인 문화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되는 문화이기도 하다. 로티는 문학적인 문화의 영웅을 시인과 혁명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이란 자아창조의 작업에 뛰어난 인물이며, 혁명가란 관습적인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실천가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사적인 영역에서 후자는 공적인 영역에서 모범이 되는 인물이다. 로티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별개로 보고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론적 탐구의 작업이 타자에게 강요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아이러니스트적인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유선, 《리처드 로티》, 이룸, 2003, pp.184-185.))

자신의 글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거나 영향을 미치기 바라는 이들에게는 탐탁치 않은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블로그에 일기를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일기처럼 앞의 내용들을 포괄하며, 바로 내 옆에 있고, 읽는 이들에게 친숙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일기로 세상을 바꾸겠어, 라며 비장하게 각오하는 사람은 없을 것 아닌가.

그런데 일기를 왜 공개적으로 쓰려고 하는 것일까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존경하는 김구용 선생의 산문집 《인연》 중 ‘일기는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편을 소개하고 싶다. 역시 일부 인용한다.

  요즘 세말에 나오는 일기책은 종류도 다양하고 가지가지 특색이 있더군요. 언젠가 보니 열쇠가 붙어 있어 잠그도록 만든 일기책도 있었습니다. 남이 읽을 수 없도록 지켜준다는 뜻이겠지요.
  나는 그런 일기책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이 읽어서는 안 될 일기라면 쓸 필요조차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안네의 일기》는 비밀히 쓴 일기였습니다만 마침내 그 일기는 많은 독자를 가졌습니다. 《도둑 일기》는 프랑스 작가 장 즈네가 남들이 읽어주기를 바라고서 쓴 작품입니다.
  이런 뜻에서 남이 읽어서는 안 될 일기를 쓴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요, 실례되는 짓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많습니다. 일기도 문학의 일종이라면 사실만을 그대로 기록해서는 가치가 없습니다. 사실은 누구에게나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큰 사건은 아닙니다. 말이란 묘한 것이어서 같은 뜻일지라도 표현에 따라 얼마든지 품격 있게 더 절실하게 전달된다는 경우를, 우리는 평소의 독서에서 많이 느껴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전적으로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남이 보아서는 안 될 일기를 쓰느니보다는 사실보다도 더 감명을 줄 수 있는 표현을 닦아야 합니다.” ((김구용, 《인연》, 솔, 2000, pp.311-312.))

아무튼, 나와 남의 생각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알 수 없는 삶이지만 조각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일기를 쓰자는 것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