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6: 행위자네트워크이론, 온라인/오프라인, 창의적인 혁신가

책을 읽다 충격적인 그림을 만났다. 지금까지 조각나 흩어져 있던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들이 서로 포옹하며 키스하는 기분이었다.

연결을 고려하면, a는 b보다 e에 더 가깝다.” ((브루노 라투르 외, 《인간‧사물‧동맹》, p.103))

이 책 《인간‧사물‧동맹》이 다루고 있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의 ‘네트워크’는 인터넷 분야나 업계에서 말하는 네트워크 개념과는 다르다. 후자는 주로 컴퓨터 통신망이나 사람들이 통신망을 통해 연결된, 연결망을 말하는데, 전자는 “실재하는 연결망이 아니라”, “행위자들의 ‘연합'(association)의 효과” ((홍성욱, 위의 책, p.10.)) 이고, “행위자는 언제나 행위자인 동시에 네트워크” ((라투르, 위의 책, p.46))라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만드는 데 주된 역할을 한 브루노 라투르는 이 ‘네트워크’는 컴퓨터 네트워크나 사회적 네트워크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라투르, 위의 책, pp.97-98.))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ANT는 인터넷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위의 그림으로 돌아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해 보자.

네트워크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의 첫 번째 이점은 ‘거리의 횡포’ 또는 근접성을 제거한다는 데 있다. … 나와 옆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누군가의 거리는 1미터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6천 마일 떨어진 어머니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 내 아들은 학교에서 동갑내기인 어린 아랍 소년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지만, 1학년 때 이런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중에는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게 될 세계에서 표류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 네트워크 개념은 우리가 공간을 정의하는 데서 지질학자들의 횡포를 걷어내는 것을 돕고, 우리에게 사회적이거나 ‘실제’의 공간이라는 관념이 아닌 관계라는 관념을 제공한다. ((라투르, 위의 책, pp.102-103))

이 개념들을 이용하여 내가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인터넷 중심의 오래된 메타포를 걷어내는 것이다. 알다시피, 온라인은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나 공간을, 오프라인은 그렇지 않은 상태나 공간을 가리킨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 이 메타포가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물음을 던져보자.

컴퓨터 앞에 앉아 웹 브라우저,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다. 온라인 상태이다. 컴퓨터를 끄고 외출을 했다. 오프라인 상태다. 그런데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지금은 무슨 상태일까? 이른바 ‘항상 온라인'(Always-on)인 상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본질적인 의문을 가져본다. 내 육체는 항상 오프라인 공간에 존재하고, 온라인 공간에 진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신만이 온라인 공간에 진입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온전한 내가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내 몸의 일부처럼 항상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쥐고 있는, 언제든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 나를 항상 온라인 공간에 연결시켜 놓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바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이분법 메타포의 경계가 흐려지거나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이제 이 낡은 메타포를 폐기함으로써 더 많은 행위자들을 네트워크로 초대하여 더욱 풍성한 설명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ANT의 7가지 테제 ((홍성욱, 위의 책, pp.20-32.))를 살펴보자.

  1. ANT는 경계 넘기를 꾀한다.
  2. ANT는 비인간(nonhuman)에 적극적 역할을 부여한다.
  3. ANT의 행위자는 곧 네트워크(network)이다.
  4. 네트워크 건설 과정이 번역(translation)이며, 번역을 이해하는 것이 ANT의 핵심이다.
  5. 네트워크를 잘 기술(description)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론이다.
  6. ANT는 권력(power)의 기원과 효과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7. ANT의 ‘사물의 정치학’은 민주주의를 위해 열려 있다.

인터넷, 특히 웹의 초창기에는 이 온라인/오프라인 메타포가 제법 쓸모 있었다. 이 둘의 상관 관계나 사용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오프라인’에 이미 있던 서비스나 사업모델을 ‘온라인화’하는 것이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시행착오를 거치고, 몇 개의 서비스들만이 살아남았다.

이와 관련하여 ANT가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참고할만하다. “기술의 효과, 용도, 의미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은 예측하지 못했던(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술이 처음에 발명되었을 때 속한 네트워크와는 다른 네트워크에 편입되면서,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효과, 용도,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기술의 발전에 맥락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만이 아니라 기술의 사용자도 기술의 발전과 변화를 낳는 중요한 주체라는 것”이고, “어떤 특정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전하고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혁신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예상하는 예언자의 능력이 아니라, 기술의 궤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외의 결과에 당황하지 않고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 과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 속에서 과거에는 없던 인간-기술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기술을 새롭게 위치시키는 능력” ((홍성욱, 위의 책, pp.141-143.))이라는 것이다.

미셸 칼롱, 〈기조 발표: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 시장 실험’〉, 1997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이 접근법에 의해 얻은 결과들, 그리고 우리가 ANT-이후의 토론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견해를 강조하는 것은 쓸모가 있을 것이다.

ANT의 결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는 그것이 행위자에 관해 제공하는 분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발표에서 이 점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려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분석을 강화하는 방법들을 제안하기 전에, 내 관점에서, 계속 유지되어야만 하는 몇 가지 구체적인 핵심들을 짧게 언급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ANT가 행위자에 대한 안정적인 이론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행위자의 근본적인 불확정성을 가정한다. 예를 들어, 행위자의 크기나 그것의 심리적 구성이나 그것의 행위들 이면의 동기가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ANT는 보다 전통적인 사회 과학의 흐름들로부터의 단절이다. (브라운Brown과 리Lee가 정치적 급진적-자유주의와 동등하게 다룬) 이 가설은 비-인간을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과학을 비-인간에게 개방했다. ANT는 또한 비-인간들을 무익한 개인주의/전체주의의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대표자의 개념을 인정함으로써, 언어를 고유의 속성이 아닌 분포의 결과로 만들었다. 내 친구인 존 로John Law가 이 분포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그것의 풍부함을 드러낼 기회가 있었다.

행위자의 불확정성은 본래 몇몇 어려움들을 수반한다. ANT는 관용도가 높아서 익명이고, 불명확하고, 식별할 수 없는 실체인 행위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끝난다. 모든 것이 행위이기 때문에, ANT 행위자는, 교대로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기재하고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대조적으로, 스스로가 기재되도록 하는 주도권을 갖지 않은 행위자가 될 수도 있다. 가장 부정적인 결과들을 초래하고 상대주의라는 자주 반복되는 비난으로 이끄는 것은 확실히 이런 측면이다. 이 분석을 체계적으로 나타내는 또 다른 방법은 ANT의 주요 결점은 바로 ANT가 단지 이론일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것은 ANT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내가 이 간략한 발표에서 하고 싶은 것은, ANT가 행위자들의 능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그렇지만 그것의 기본 가설들을 부정하지 않고, 특히, 행위자에 대한 연역적 정의 또는 행위에 있어서 비-인간들의 역할에 대해 거부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고 ANT를 유익하게 실험해보기 위해, 경제 시장 분석이 특히 유용하다. 시장은 인간과 비-인간이 섞여 있고 그들의 관계를 통제하는 제도이다. 경제 이론이 설명하는 것은, 다른 것들 중에서도, 인간 행위자 간의 재화의 유통과 자원의 배분이다. ANT가 인간과 비-인간이 동등하게 관련된 이런 뒤얽힘들을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해 특별히 의도되었음에도 ANT가 시장에 대해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걱정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ANT에게는 고려해볼만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ANT는 유통되는 것(자력으로 행동할 수 없고, 수동적이고, 비-인간으로 분류되는 재화)과 능동적이고 복잡한 결정들을 할 수 있는 인간 행위자들(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도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에서는, 우리가 실제 시장을 참조하든 경제 이론의 시장을 참조하든, 관련된 행위자들이 매우 독특하고 큰 노력이 필요한 능력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그것들은 계산하고 있고, 그것들의 이익을 인식하고 추구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요컨대, 시장은 ANT 가설을 제거하는 것 같이 보인다. ANT는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하기 어렵고, 행위자들이 다양한 형태와 능력을 가진 상황들을 분석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그런데, 시장은 이 상황과 전혀 반대이다; 모든 것은 범위가 정해졌고 역할은 완벽히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ANT는 시장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유용한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변경들을 필요로 할 것인가?

(Michel Callon, Keynote Speech: ‘Actor-Network Theory – The Market Test’, 1997의 도입을 번역했음. PDF 문서임.)

존 로,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노트: 배열, 전략 그리고 이종성〉, 1992

가끔 우리는 질서가 붕괴하는 것을 방관자로서 지켜보는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가 항상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조직이나 체계들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또는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 — 이 사라져 버린다. [구소련의] 인민 위원, 중요 인물 그리고 업계의 거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런 위험한 순간들은 정치적 전망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사회적 격동의 숨겨진 함정이 열릴 때 우리는, 세계의 주인들이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갑자기 배운다.

어떻게 다르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동안 뿐이라도, 어떻게 그들은 그 자신들을 우리와 다르게 만들었을까? 어떤 조직적 수단들이 그들 자신을 적절한 곳에 있게 했고, 그들을 보다 일찍 넘어뜨릴 수도 있었던 저항들을 극복하게 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것과 결탁할 수 있었는가? 이것들은 사회 과학의 몇몇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 글의 주제인 사회학에 대한 접근인,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중심에 놓여있는 질문들이다. 해석의 사회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은 권력의 역학에 관심이 있다. 그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을 분석하려는 방법과 엄밀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위대한 사람들을 분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이 세계의 거물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거물들이 이 지구의 비참함에 대해서는 사회학적으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만약 권력과 조직의 역학을 이해하고 싶다면, 설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실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편으로는 거시사회적 체계, 다른 한편으로는 파생한 미시사회적 세부의 잡동사니들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권력과 조직의 기원들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들의 대부분을 고립시킨다. 대신 우리는 깨끗한 과거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상호작용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상호작용이 모든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어떻게 몇몇 종류의 상호작용들이 그 자신들을 안정화시키고 재생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는지; 어떻게 그들이 저항을 극복하고 “거시사회적”이 된 것으로 생각되는지; 어떻게 그들이 이러한 권력, 명성, 크기, 범위 또는 우리 모두가 익숙한 조직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되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핵심 가정 중 하나이다: 나폴레옹도 본질적으로는 3류 도박꾼과 차이가 없고, IBM도 본질적으로는 노점상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크다면,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 어떻게, 바꿔 말하면, 크기, 권력 또는 만들어진 조직을 — 연구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글에서 이종 네트워크(heterogeneous network)라는 은유를 연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중심에 놓여있고, 사회, 조직들, 행위자들 그리고 기계들이 모두, 다양한(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요소들로 양식화된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진 결과들이라고 제시하는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네트워크 통합, 그리고 특히 네트워크가 어떻게 단일한 점의 행위자들처럼 보일 수도 있는지를 고찰한다: 바꿔 말하면, 어떻게 영국 정부를 구성하는 모든 잡동사니들을 말하기보다는 때로는 “영국 정부”에 관해 말할 수 있는냐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네트워크 배열의 특성을 조사하고, 그 특성을 명사(noun)라는 기정 사실로 보기보다는 — 저항을 극복하는 다소 불확실한 과정으로 — 동사(verb)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네트워크 배열의 요소들과 전략들을 논의하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조직적으로-중요한 몇몇 결과들을 설명한다. 특히, 양식이, 계급과 권력을 포함하여, 제도적이고 조직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낸 몇몇 방법들을 고찰한다.

(John Law, Notes on the Theory of the Actor Network: Ordering, Strategy and Heterogeneity, 1992의 도입을 번역했음. PDF 문서임.)